無價紙

로그 2009/05/19 19:58

‘하루의 시작은 무가지와 함께’

내 삶의 모토가 된 지 오랜 것 같다. 공짜로 비교적 짧지 않은 시간 무료함을 달래주는 덕에 손에 가까이 두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전철 탈 때마다 버릇이 된 셈이다.

전철을 타면 창밖으로 검은 세상이 펼쳐지고, 그곳엔 바라보고 있다간 빠져들 것만 같은 심연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지하철 안에서 둘 곳 없는 시선이 머무는 곳이란 무릇 승객들이다.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파마머리, 대머리, 하이힐에 레깅스, 등산화에 면바지, 저마다의 사연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며 한 사람이 살아온 종적과 현재 행선을 가늠해보곤 편협한 소견을 더해 나만의 결론까지 내려 본다.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의 일생에 대해 5분만에 판결문까지 써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변호할 기회마저 놓친 사람들(정확히는 변호할 필요가 없는)은 무심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각종 종이뭉치를 넘기거나 귓가에 울리는 비트 속으로 쿵짝쿵짝 빠져들고, 이내 뻔뻔한 내 눈길을 의식하며 누군가 불편해질 즈음, 나는 손에 든 무가지로 태연한 척 시선을 옮긴다.

펼쳐진 지면으로 나를 스쳐가는 수 없이 많은 상품들, 걔 중에 몇이나 내 기억 속에 머물까. 새로 나온 핸드폰부터 자동차까지, 저마다 타인의 욕망에 편승해 자신을 알리기에 혈안이다. 무심한 사람들은 유행과 상품에서 안식을 얻고, 내 앞에 선 사람의 B급 파텍 필립은 자신이 감긴 손목 주인의 상처받은 영혼을 대변하고 있다. 왜 그는 수십만 원짜리 가짜 시계를 차는 걸까.

소비사회에서 욕망은 경제 구조의 버팀목이다. 자본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차별하라 부추기고, 사람들은 사랑받기 위해 타인을 차별한다.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 외롭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 필요하고, 누군가 갈망하기 위해 자본이 전제된다. 자본은 한정된 재화고,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욕구불만 속에 허우적댄다.

자본은 이제 사람들의 욕망을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이는 문화라는,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변주되고 6,500원 짜리 잡지를 통해 재생산된다. 저마다 이름표를 붙인 나름의 변주곡에는 자본 이데올로기라는 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지만, 아무도 그런 먼지 털어낼 생각을 않고, 그 안에서 콜록거릴 뿐이다. 비판이 없는 이곳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가 병든 곳에서 아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다.

사랑을 갈망하는 이는, 허무한 사랑에 상처받고, 누군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본질에 대해 고민해보지만, 매체는 우리에게 소비하라며 위로한다. 채우고 채우지만 채워지지 않고, 욕망의 나선은 본질을 겉돌며 환상을 좇는다. 우리는 지쳐 쓰러져 울다 잠이 든다. 개똥벌레처럼. 그리고 다시 하루는 시작된다. 무가지와 함께.


top

◀ PREV : [1] : [2] : [3] : [4] : [5] : ... [16] : NEXT ▶